시계이야기2014. 2. 17. 10:39





<이 기사는 FORTUNE KOREA 2013년 8월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컴플리케이션에 대한 집착과 열정’. 시계 마니아들이 오데마피게에 보내는 찬사다. 오데마피게가 보여준 컴플리케이션 기술 혁신의 역사는 그대로 ‘세계 시계 발전사’가 됐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1874년. 시계사에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당시 23세였던 줄루이 오데마 Jules Louis Audemars와 21세였던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 Edward Auguste Piguet가 스위스 발레 드 주 Valle de Joux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그것이다.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두 젊은 시계 장인들은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뜻을 같이했다. 이들이 만난 지 1년 만에 론칭한 오데마피게 Audemars Piguet는 올해로 138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시계 브랜드가 됐다. 설립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집중하고 있다.

컴플리케이션 워치란 시간 및 날짜 표시 외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시계를 말한다. 세밀한 시간 측정을 가능케 하는 크로노그래프, 남은 동력의 양을 보여주는 파워리저브, 월말 날짜 수정이 필요 없는 퍼페추얼 캘린더,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그랜드 소네리, 중력에 의한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투르비용, 좀 더 복잡한 시간 표시인 천문 변화, 세계 시간, 문페이즈 등의 기능이 추가돼 있으면 일반적으로 컴플리케이션 워치라 한다.

오데마피게는 ‘컴플리케이션을 넘어선 컴플리케이션’을 추구한다. 오데마피게는 창립부터 현재까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집중해왔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워치란 여러 컴플리케이션 기능 중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기능이 집약된 시계를 말한다. 컴플리케이션에 대한 집착은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현재 오데마피게가 가지고 있는 ‘세계 최초’ 타이틀은 무려 19개에 달한다.

세계 최초의 점핑 아워 워치나 초박형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셀프와인딩 투르비용의 개발 등 오데마피게는 시계사에 기념비적인 업적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은 건 전문 워치 메이커들에게도 꿈의 기술이라 불렸던 ‘AP 이스케이프먼트’의 개발이다.

AP 이스케이프먼트는 투르비용 기술의 업그레이드판이다. 투르비용은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를 별도의 케이지에 담아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케이지를 회전시키는 장치다. 이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시계에 미치는 지구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구 중력은 지속해서 시계 장치에 영향을 미쳐 시간 오차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오데마피게의 장인들은 투르비용조차도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케이지가 수직으로 위치할 때에는 밸런스 스프링의 탄성이 불균형해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탄생한 AP 이스케이프먼트는 밸런스 스프링 두 개를 회전시켜 수직 방향에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중력에 따른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AP 이스케이프먼트지만, 이 장치가 꿈의 기술이라 평가받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기존의 장치들은 3~5년마다 오버홀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오버홀이란 장치를 모두 분해해 세정 및 주유, 조립, 조정하는 검사·수리 과정이다. 부품 간 마찰로 인한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AP 이스케이프먼트는 이런 과정이 필요 없다. 마모로부터 자유로운 설계로 윤활유가 필요 없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데마피게 역시 다른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1960~1970년대 쿼츠 시계의 등장과 대중화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지로 작동하는 쿼츠 시계는 장치적 특성으로 인해 기계식 시계보다 월등히 정확한 시간을 자랑한다. 시계의 정확성 척도인 진동수비교에서 기계식 시계는 초당 6~8회를 진동하는 데 비해 쿼츠 시계는 3만 회 이상 진동한다. 시간의 정확도를 위해 기계식 시계가 내재해야 했던 여러 부품과 기술들이 필요 없었던 까닭에 크기와 부피, 디자인에서도 쿼츠 시계가 앞서 있었다.

쿼츠 시계의 등장과 대중화는 기계식 시계를 생산하던 하이엔드 브랜드들에게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왔다. 1970년대에는 스위스 시계장인들의 절반 이상이 실업자로 전락할 정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어려웠던 시기에 오데마피게는 현재까지도 자사 브랜드 최고 작품으로 손꼽히는 로열오크 Royal Oak 컬렉션을 내놓아 공전의 히트를 했다.

흔히들 로열오크라 하면 ‘최초의 스테인리스 스틸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모델이 인기를 끈 건 단순히 스틸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틸 재질과 스켈레톤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스켈레톤은 오데마피게가 1934년에 처음 선보인 기술로,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다이얼 내부를 오픈하는 것이다. 골드, 주얼리가 인기였던 당시에 스틸 소재의 사용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무브먼트의 메탈릭한 이미지와 스틸 재료의 결합은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열오크는 시계사에서나 오데마피게에 있어서나 여러모로 큰 족적을 남긴 모델이다. 로열오크는 특히 시계 베젤에 8각형 옥타곤 모양을 도입한 세계 최초의 시계이기도 하다. 베젤은 8개의 스크류로 고정돼 있는데 어떠한 충격에도 분해되지 않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로열오크란 이름은 영국의 찰스 2세가 망명 중 올리버 크롬웰의 총격을 피해 숨었던 떡갈나무에서 유래된 것으로, 뛰어난 내구성을 연상케 한다.

최근에는 여러 브랜드에서 스켈레톤과 스틸의 조합, 옥타곤 베젤의 도입 등 비슷한 종류의 시계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로열오크는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 유행을 선도한 모델’이란 점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오데마피게의 지독한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대한 집착은 그 자체로 여러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제시했다. 이들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오데마피게의 홍보대사가 됐다. 유명 팝스타인 비욘세는 ‘Upgrade you’라는 노래를 통해 오데마피게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했다. 비욘세 외에도 빌 클린턴, 리오넬 메시, 미하엘 슈마허, 로리 매킬로이, 르브론 제임스 등이 오데마피게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 바 있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과 이를 위한 ‘지독한 집착’, 그것이 오데마피게가 이들에게 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http://economy.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industry/201401/e2014010615353247430.htm&ver=v002

Posted by JsPark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