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2016. 5. 14. 22:17




"아파서 잠도 못 자겠어요." 


40세 이모씨. 폐암 환자로 척추와 골반뼈에 전이된 이후, 항암치료는 포기하고 증상 조절만 하고 지내는 환자이다. 허리와 골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자지 못할 정도 이며, 참을 만하다가 갑자기 통증이 심하게 하루에 10차례 이상 심하게 몰려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암 통증. 다른 기저질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암이 일으키는 통증을 말한다. 말기 암 환자에서는 암을 치료하는 개념이 아니라, 암으로 인한 증상을 조절하는 개념으로 환자에게 접근해야 한다. 말기 암 환자들의 통증 조절은 크게 비마약성 진통제를 써보다가, 용량을 올려도 조절되지 않는 경우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게 된다. '통증이 조절될 때까지'용량을 올리게 되는 것이 포인트이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암으로 인한 통증은 평상시에는 조절이 잘 되다가 가끔씩, 혹은 어떤환자의 경우에는 하루에 몇 차례씩 통증이 적게는 몇 분에서 많게는 60분정도 까지 통증이 강하게 지속되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를 '돌발성 암 통증' 이라고 한다.


이모씨의 경우 이미 울트라셋이라는 비마약성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를 합쳐놓은 약을 먹고있으나 조절이 되지 않고 있었다.  통증양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이렇다.



세로는 통증 강도, 가로는 하루 24시간을 나타낸다.  기본적으로 깔리는 baseline 통증도 중등도 이상으로 강하고, 하루에도 4차례 이상 돌발성 암 통증이 오고 있는, 재앙스러운 통증으로 환자의 일상생활이 파괴되고 있었다. 환자의 파란색을 줄이면 줄일 수록 환자의 남은 생이 행복해진다.


baseline 통증을 중등도 이하로 내리고, 돌발성 암 통증을 하루 4회 이하로 줄이면서- 돌발성 암 통증의 강도도 줄여야 한다. 세가지 목표를 가지고 치료에 돌입했다.


baseline 통증을 먹는 마약성 진통제와 붙이는 마약성 진통제 두가지를 사용해 줄이고 이를 통해 돌발성 암통증 횟수가 줄기를 기대했다. 


또 돌발성 암 통증을 잡기 위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설하정 진통제(혀 아래 넣고 빨아먹는 진통제)를 사용했다.  빨아먹기 시작한지 10분정도면 효과가 나타난다. 




3일 후, 환자 분의 통증 양상이 위 그림처럼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깔리는 통증은 이제 참을 만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돌발성 암 통증이 하루 4회 수준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설하정은 하루 4회까지만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돌발성 암 통증의 강도가 너무 심하다.  이는 설하정을 더 센 걸로 올리면 될 것이다. 


그는 8살 갓 초등학교 입학한 딸과 부인이 있었다. 남은 여생이 머지 않은 환자의 삶의 질을 조금이나마 올려드릴 수 있다면, 행복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다면. 좋겠다.



*용어*

배경통: 암 통증이 하루 12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 

돌발성 암 통증: 배경통이 잘 조절되는 환자에서 일시적으로 악화되는 통증이 있는 경우 

 

Posted by JsPark21
의료2016. 4. 16. 22:49

  




17살 먹은 손녀를 할머니가 열이난다고 데려왔다. 열난지 3일 째란다. 설사나 변비, 구역 및 구토는 없었다. 감기, 심하면 폐렴, 요로계 감염, 혹시 급성복증일까 우려하여 문진을 진행했지만, 두통 하나 빼고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다. 의사는 만능이 아니다. 호소하는 증상은 열과 두통밖에 없으며, 어디 여행 갔다온 것도 아니고 신체검사상 특별한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로 검사를 진행했다. 열, 두통이 같이 있는 경우 뇌수막염을 의심할 수 있지만 열이 나는 증상 자체가 두통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신체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경우 뇌수막염을 강력히 의심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수막염 가능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저주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뇌수막염을 확진하려면 '척추천자'를 해야 되는데- 한번 시행하면 6시간 이상 누워만 있어야 되고, 척추신경 가까이 바늘을 꼽아 척수액을 빼내야 되는 검사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검사에는 몸에 염증이 있다 라는 결과 말고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했고, 척추천자를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이런 경우 대개 결과는 '꽝'...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꽝'이었다.  이런 경우 큰 이상은 없다는 설명하에, 응급실 밖으로 나서길 권해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찜찜하지 않은가..겉으로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큰병이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환자가 더 안좋아질까 걱정하며...대부분 검사에서 이상한 반응이 걸리거나ㅡ 아닌 경우 특별한 문제 없이 열이 멈추지만...이경우는 아니었다. 검사에서 이상없어 퇴원 진행했으나, 3일 후 다시 내원한 환자다. 딱 하나, 요로계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검사결과 하나 빼고...


"CT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특별히 뭐가 나올까 기대하고 권유드린게 아니었다. 요로계 검사에서 이상이 있다는 건 요로계 감염을 의미한다. 급성 신우신염- 신장 및 신우에 염증이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 경우 왼쪽 이나 오른쪽 등 타진시 아파하는 데 환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행하는 거다. 결과는 특별한 이상 없음!


"집에 가시고...외래에서 원인을 감별해 볼께요.  특별한 이상은 없는 거 같아요."


평소 같았으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가셨겠으나, 해열제를 줘도 열이 잘 잡히지 않고 , 무엇보다 척추천자 후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등통증이 진통제를 줘도 잘 잡히지 않는 상황에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가시겠는가? 나의 권유는 실패했고, 원인을 찾아내란 소리만 듣고 말았다...


장기에 이상이 없다...CT를 찍었는데 배쪽 및 폐 쪽은 아니다...장기에 이상이? 


장기에 이상이 없다면, 그 바깥에 열을 일으키는 병소가 있거나, CT에서 보이지 않는 병소가 있는 것이다.


환자를 다시 체크해보니, 여드름이라기엔 수포도 없고 너무 크기도 균일한 빨간색 피부병변이 양 팔과 얼굴 전체에 저명했다. 바이러스성 감염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이 경우 피부에 특히 목쪽 림프절이 커져서 잡힐 수 있다. 서둘러 목을 촉진하니 과연 목 여러군데에 1-2cm 정도의 림프절이 커져 있었다.  


"여기 누르면 아파요?" 

"아..아...네..."

(나: 왜 얘기 미리 안했어요...?ㅠㅠ 미리 알았으면 CT를 왜 찍었겠어요ㅠㅠ 피부 이상한것도 왜 얘기 안했어요 왜...)


감염내과에 바이러스성 감염으로 환자 봐달라고 연결해드렸다. 돌이켜 보면 피검사에서도 염증 반응이 있는데도 오히려 백혈구 수치 및 혈소판이 낮아져 있었다. 몰려드는 환자를 보다 보니 사소할 수 있는 변화들을 놓친 거다. 키무치 병, 림프종 등도 의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차칫하면 더 진단이 지연될 수 있었던 환자를 척수검사 부작용으로 잡았다는게 다행이었다. 물어보지 않으면 환자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환자를 믿으면 안된다. "A patient always lies."

  




Posted by JsPark21
의료2016. 4. 7. 17:07

 



  응급실에 근무할 때 있었던 얘기다. 오후 7시, 누군가는 꽉막힌 퇴근길에 한가로이 클래식을 듣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응급실에서는 환자들이 밀려오는 정신 없는 시간대다. 새로 근무한지 한달도 안되어 정신없는 와중에-  신환을 보러 환자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부리나케 갔다. 왠걸, 아는 얼굴이다.


"상철아! 왠일이니"(가명)

"아...형ㅜㅜ"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상철이가 침상 위에 앉아있었다.  6년만인가 싶었다. 반가움을 뒤로 하고 왜 왔는지 물어보니, 급성 췌장염으로 왔다고 했다. '? 진단명을 얘기하네?' 보통 증상을 얘기하지, 이런 경우는 지병인 경우가 많다. 환자가 자기 몸을 아는 거다. 과연 물어보니 예전에도 여러번 증상이 있었다고 했다. 입원도 여러차례...젊은 나이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워 술좀 줄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술 거의 안마신다고...유전성 가능성이 높은 췌장염이라고 교수님한테 들었단다. 통증이 너무 심해 진통제 여러 대 맞고도 힘들어 했다. 병실이 안나 응급실에서 대기중 이라고ㅜㅜ 안타깝지만 내가 힘쓸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배 위로 신체 진찰을 해보니 과연 상복부를 누르니 아파했다.


"등도 아프니?"

"등은 안아파요. 배만ㅜ"

"아픈건 꾸룩꾸룩 아팠다 안아팠다 하니?"

"아뇨...계속 아파요...찌르는듯 해요"


췌장염의 경우 배 통증이 찌르는 듯하고, 심한 정도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 통증이 지속적이라는 것. 상복부 통증의 경우 흔한 원인으로 급성 위염이 있는데, 이 경우는 배 통증 양상이 아플땐 무척 아프다가 어느 순간 거의 통증을 못느낀다.  통증 지속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통증도 쥐어짜는 느낌의 통증을 호소한다. 위는 근육질로 된 기관이다. 위염의 경우 굉장한 힘으로 위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통증이 유발되는데- 췌장염의 경우처럼 염증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게 아니므로 통증 양상이 위처럼 나타난다.

 

반면 췌장염은- 췌장 세포가 파괴되어 효소가 흘러나와 췌장 및 주변 조직을 녹이며 염증을 일으키므로, 통증 양상이 지속적이고, 환자마다 호소하는 통증 강도가 다양하다.


췌장은 배 깊숙히 있는 기관이므로-  등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상철이처럼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누울 경우 췌장염에서 복통이 더 악화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철이 처럼 앉아있거나 등을 숙이고 있는 경향이 있다. 


내가 술 많이 먹는 지 물어본 이유는 뭘까? 급성 췌장염의 가장 흔한 위험인자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배는 안타깝게도- 술을 많이 먹지 않음에도 췌장염에 걸렸다. 담석증이 그 뒤를 이으며- 고중성지방혈증도 위험인자이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보고나니, 어느덧 밤 12시가 되었고- 상철이는 입원실로 올라가고 없었다. 잘 치료받고 퇴원하기를 빌었다. 금식 하고, 마약석 진통제까지 맞고, 수액 맞고 하다보면 어느 덧 좋아져 있을 것이다. 


급성 췌장염과 위염은 상복부 복통, 구토, 구역감, 술먹고 악화, 식후에 악화되는 공통점이 있지만- 위 상황처럼 복통의 양상, 등통증 유무 등으로 감별이 가능하다. 단순한 위염이라면 개인병원에서 충분히 치료 가능하나- 새로 발생한 췌장염스러운 복통이라면 반드시 응급실에 와야 한다.  보통의 진통소염제로는 조절이 힘들고,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호전된다.




 







Posted by JsPark21
의료2016. 3. 22. 22:27




42세 남모씨, 딸 하나 둔 가정주부이다. 평상시 특별한 병 없이 지내던 중, 자꾸 딸에게 '내가 왜 TV를 보고 있지?', '내가 왜 앉아있지?' 라고 수십차례 반복하여 물어보는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기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수분 밖에 되지 않아 생긴 증상이다.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남편과 딸은 너무 놀란 나머지 울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환자분, 어제 저녁에 먹은 거 기억나요?'

'아뇨...'


'오늘이 몇년 몇월 몇일이죠?'

'2016년...까지는 기억나는데 나머지는 잘 기억 안나요'


응급실은 응급한 질환을 위주로 가능성 있는 질환을 하나씩 지워나가야 된다. 흔하고 가장 응급한 질환이 '뇌졸증'이다. 하지만 뇌졸증을 시사하는 느껴 보지 못한 강도의 두통, 감각이상, 한쪽으로 힘빠지는 운동계 이상, 말이 어눌함 등의 증상은 없다.


패닉에 빠진 가족들을 뒤로 하고, 검사들을 진행했다...뇌 신체검사에서는 정상이었다. 오로지 '기억'이 잘 되지 않는 증상만 있다.


기억을 잘 못하지 않는 증상(기억상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향성 기억상실, 뇌의 병변이 발생한 이후의 일을 기억 못하고, 그 이전의 일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증상과- 후향성 기억상실, 뇌의 병변이 발생한 시기 이전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환자의 경우 증상 발현 이후 자기가 뭘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가족원에게 자기가 뭘했는지를 물어보고 있다. 따라서 전향성 기억상실에 해당한다.  거기에 올해가 몇월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짧은 기간의 후향성 기억상실 역시 보이고 있다.  마치 술취한 사람이 한얘기 하듯 또 하는 것처럼.


다친 적도 없고, 이전에 이런 적이 단한번도 없고, 뇌 CT상은 정상이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 코사코프 증후군이라고,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기관인 해마가 서서히 데미지를 입어서 기억이 잘 되지 않는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 있으나- 환자의 경우는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얌전한 주부란 말이다! 그렇다면 흔하지 않은 질환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TGA"(Transient Global Amnesia_일과성 전체건망증) 

수시간 이내의 전향성 기억상실 증상을 보이며, 기억 상실 말고는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전혀 없다. 오로지 이것만 보이는 경우 진단 내릴 수 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5-10분 미만)을 기억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인 질환이다. 그래서 자꾸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주변에 물어보게 된다.


MRI, CT를 찍는 이유는 이를 일으키는 다른 질환이 있나 보기 위해서지, TGA 에 특징적인 영상의학적인 소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에서 다양한 소견이 혼재한다고 한다.


 보통 일생에 한번 정도만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여러번 오기도 한다. 신경과 의사가 진찰하고, 안심시키고 집으로 보내드렸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신경과 외래 약속 잡고....얼마나 놀랐을까.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메멘토 주인공이 되어버렸으니...다행히 후유증이 남지 않는 다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JsPark21